특별한 하나님의교회 眞理애 대하여...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의 믿음 ▶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힘내새우~~♡ 2020. 8. 10. 20:31

안녕하세요..이웃님들!! 장마가 지속되다보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도 더 많아지는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이런 천재지변같은 장마, 기상이변, 재앙이 올 때마다 생각드는게 고통없다하신 천국을 더욱 소망하게 됩니다. 그 천국을 향한 소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가져야 할 믿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예전에 들은 설교 말씀이긴한데... 다시 봐도 은혜가 되고 저의 마음에도 새겨볼까해서 준비했습니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에 관한 은혜로운 복음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존재했었습니다. 뽑고 싶어도 뽑아낼 수 없는 가시가 신체에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가진 육체의 가시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기전에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악을 행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것이 예수님이 육체를 입으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사울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전하는 제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하다 다메섹 노상에서 하늘로부터 강한 빛을 받고 눈이 실명되게 됩니다.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했던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인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다시 보게 됩니다(행9:1~19).

그 뒤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육체의 가시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갑작스런 실명에 눈에 대한 고통이 늘 자신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10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믈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렇듯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지니고 다니게 됩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바울을 보면서 성도들은 눈이라도 빼어주고자 했던 내용도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3절~15절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육체의 약함을 가지고 있던 사도 바울을 같이 복음하던 성도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같이 또 예수님같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울이 원하기만 하면 눈마저도 빼줄수 있을 만큼 그를 대하였습니다. 즉 엄청난 고통인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고통이 너무나 극심하다보니 고린도후서에서는 세 번 예수님께 간구드렸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육체의 가시를 통해 자고하지 않게 그리고 약할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그 몸에 그대로 두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은 원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 복음의 흔적을 가진것으로 육체의 가시를 오히려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육체의 가시는 아니지만 내면의 가시를 늘 간직하며 살아갔던 베드로의 삶에 대해 조명해 보겠습니다. 왜 베드로를 가르켜 내면의 가시를 가지고 살아간 사도라고 증거하고 있는지 성경통해 베드로의 경우도 함께 만나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미 베드로가 새벽 닭 울기전에 세번 부인할 것을 예언 하셨지만 베드로는 절대로 죽어도 부인하지 않겠다며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다짐과는 다르게 공회앞에서 거짓증인의 말들과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는 상황들이 벌어지자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까지하며 부인하고 마는데...

마태복음 26장 69절~75절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죽는데까지 따라가겠다던 베드로였으나 극한 상황이 되다보니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게 됩니다.

내가 만약 베드로였다면 동일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위해 이 땅에 오신 구원자다!!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할 하나님이시다!!라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는 새벽 닭이 울때마다 평생을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을 부인한 죄책감으로 인해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면서​ 복음했을지 마음으로 느껴졌습니다. 평생에 씻을수 없는 아니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내면에 가시를 지니고 매일 매일 회개하는 삶을 살며 복음에 임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선진들을 보면서 나는 과연 얼마만큼의 내면이든 육체든 가시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걷고 있는 확실한 복음안에서 하늘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삶에 과연 얼마나 감사드리면서 그 뽑을수 없는 그 가시들을 복음의 흔적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이 길을 걸어왔는지 뒤돌아 보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의 삶...

어부로써의 삶을 살던 천한 직업을 가진 베드로였지만 예수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랬을때 베드로는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거친 성정을 복음하면서 하나 하나 버리고 닦아가면서 종래에는 어떤 믿음의 길을 걸어갔을까요?

 

 

베드로후서 1장4절~7절, 11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사도중의 사도로 변모한 베드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에 대해서 정확한 말씀으로 주고 계십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결국엔 자신의 거칠고 모난 성정을 다 버리고 변화받은 사도 베드로는 이같이 하면 영원한 나라 즉 천국에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

사도 바울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요? ​그는 진리를 만나기 전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부러울게 없는 좋은 가문 그리고 흠이 없는 자라고 자신했던 1인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5절~8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하나도 부족함이 없던, 모든것이 출중했던 사도 바울의 삶! 가문이면 가문, 지식이면 지식, 육적인 것은 하나도 부족함이 없었던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서 육신쓰고 오신 하나님임을 깨닫고 걸어간 복음의 행적은 어떠했나요?

예수님을 전하며, 복음하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태장으로 맞고 돌로 맞으며(고후12:22~28) 애매히 겪는 고통이 너무나 많았던 바울이었고 너무나 큰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있으면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커졌으면 커졌지 절대 그 고통으로 인해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이 시대 육체입고 사람되어 오셔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늘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를 영접한 우리의 삶은 어떤가요? 사도 바울처럼 매 맞으면서 복음하고 있나요? 자신의 찬란한 인생을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한 희생의 복음을 하고 계신가요? 아님 사도 베드로처럼 자신의 거친 성정을 다 변화받고 신의 성품이 되어 감사함으로 믿음생활하고 계신가요?


​하늘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무슨일이 있어도 지옥이 아닌 천국갈 수 있는 믿음의 기름을 준비하라 하시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 감사해야 한다... 이땅보단 하늘에 소망을 두어라..하시면서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며 용기를 주고 계십니다.

 

 

지금 작은 고난으로 힘들어 하시고 계신가요? 고난은 하나님의 구원받을 자녀들이 마땅히 받게 되는 아버지 어머니를 닮아 사는 복음의 흔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늘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의 사랑의 음성을 마음에 새기는 가운데  육체의 가시든 내면의 가시든 지닌체 뒤따르는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운동력이 있어 살아 역사하는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가운데 아버지, 어머니처럼 복음하고 희생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되어요... 천국은 우리거니까~ 끝까지 어머니와 동행하는 우리되어요^^ 멀지 않았습니다. 천국이!!! 그러니 힘내요!!!♥

https://www.youtube.com/watch?v=pSIom1s9cD8